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고령 지산동 대가야 고분군 (문단 편집) === 지산동 30호분 === 대가야 박물관 입구에 도착해서 왼쪽의 언덕길을 조금 걸어올라가다보면 바로 나오는 무덤이다. 1994~1995년에 영남매장문화재연구원[* 현 영남문화재연구원]이 대가야 박물관 부지를 선정하면서 부지에 위치한 이 무덤을 발굴조사하였다. 이 무덤 또한 순장묘[* 순장곽은 5개 정도가 나왔다.]이고, 도굴되었음에도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. 유물의 추정년대도 특히 이른 편이고, 같은 능선에 목곽묘인 73, 75호분이 축조되어 있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 비교적 일찍 축조되었다고 추정된다. 봉분의 규모는 동서 18m, 남북 15m 가량이며, 석실은 길이 6.45m, 너비 1.26m, 높이 3m 정도이다. 특이하게도 석실 덮개돌에 이전 청동기시대에 새겨놓은 암각화를 그대로 뜯어와 사용하였다.[* 역설적으로 이 덕분에 바깥에 있었다면 사라졌을지도 모르는 암각화가 보존될 수 있었다.][* 이런 현상이 삼국시대 유적에서 나타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, 같은 가야 고분군인 [[말이산 고분군]]에도 아예 '암각화 고분'이라는 무덤이 있다. 뚜껑돌이 지산동 30호분처럼 암각화를 잘라서 사용한 것이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.] 이 고분이 유명한 이유는 이곳에서도 금동관이 출토되었기 때문이다. 크기는 매우 작아서 아기의 머리에나 맞을 정도이며, 아마도 주인인 왕자가 아기 때 사망하여 이 무덤에 묻혔으리라 추정한다. 실제로도 발굴 때 작은 덧널에서 유아로 보이는 유해와 함께 출토되었다. 현재 이 금동관은 대가야박물관에서 소장, 전시 중이다. [[파일:external/goryeong.grandculture.net/GC029P2132_m.jpg|align=center&width=400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